1970년대 한국축구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이영무선수만큼 부지런한 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국제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의 활동은 두드러졌습니다. 그리고 특기(特記)할만한 것은, 그가 슈팅한 볼이 골인되었을 때, 그의 세레머니는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슴 뿌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릎 꿇고, 그것도 어른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는 정말 대단한 용기를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또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본(本)을 보여 준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은퇴하고 난 후, 박주영선수가 등장했는데 그도 이영무선수와 마찬가지로 골을 넣은 후,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그들의 기도가 유감스러운 것은 그들이 기도할 때는 반드시 ‘자기가 골인을 시킬 때만’ 하는 기도였습니다. 축구에서의 골인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닐 텐데 나머지 선수들은 그 절정의 순간을 같이 누리지 못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수를 그냥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모습이 때론 민망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도’는 승패(勝敗)와 상관없이 해야 할 텐데 그날 시합 중, 골인을 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쳤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그와는 반대로 경기에 패했더라도 자신이 골을 넣으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경기 중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골을 넣었을 때뿐 아니라 설령,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골을 넣지 못해 패했다 하더라도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큰 감동을 주었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TV를 통해 프로 복싱 경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4회전을 치르는 무명 선수들이었는데 프로 세계의 등용문(登龍門)이기도 했습니다. 공이 울리기 직전, 어떤 선수가 글러브를 낀 두 손을 모으고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두 선수를 모르는 처지인지라 이왕이면 기도하는 선수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2회전에서 기도했던 그 선수가 무참하게 KO패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짜~식! 기도나 하지 말지...” 카운트아웃이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링 위에 의사가 올라가고 들 것을 가지고 올라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얼마 지난 후에야 기도했던 그 선수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섰습니다. 이제 정신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퇴장하기 직전, 그는 자기 코너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무참하게 KO패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였습니다. 정말 잊히지 않는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개업(開業)예배는 보지만 폐업(閉業) 예배는 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개업예배는 많이 인도해 보았지만, 폐업 예배는 평생을 목회하는 동안 딱 한 번 인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폐업 예배가 개업예배 때보다 더 은혜다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더 은혜로운 것처럼 말입니다.(전도서7:2) 유대인의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잘 될 때는 물론, 잘 안 될 때도 하나님 앞에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하나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偶像)을 섬기는 사람들은, 잘될 때는 제단(祭壇)에 제물(祭物)이 차고 넘치도록 쌓아두지만, 잘 안될 때는 도끼를 들고 제단에 뛰어 올라가 ‘이게 뭐냐?’면서 그 우상을 찍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차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승리할 때도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패할 때도 역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곳뿐만 아니라 가장 어둡고 칙칙한 곳에도 계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과 출세와 번영 속에서도 하나님을 보아야 하지만, 실패와 좌절과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한 하나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롱마당 이야기
어느 축구선수의 기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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