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지도를 펴 놓고 경부선을 따라 내려가면 대구와 부산 중간 지점에 밀양(密陽)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밀양에는 양준택목사님이 전쟁 중인 1952년도에 개척한 밀양감리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 원금죽이라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전쟁 통에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들 넷을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분이셨는데 신앙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권사님이셨습니다. 그에겐 많은 일화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밀양감리교회를 건축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수요 저녁 예배 후, 목사님은 건축비 때문에 감리교 본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시면서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올라가셨지만, 원 권사님만 아무도 없는 텅 빈 차가운 교회 바닥에 꿇어앉아 교회 건축을 위한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셨는데 ‘나는 교회 건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하고 기도하다 말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에겐 피난민들에게 주어진 모자원(母子院)이 하나 있었는데 방만 한 칸 있는 집이었습니다. 이 방에서 아들 넷을 데리고 살았는데 이것이 그가 가진 재산 전부였습니다. 그는 이 집을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집을 드리는 것은 좋은데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 겨울에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살 집을 마련해 주실 것’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평소 이 시간이 되면 다리 밑에서 거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오늘은 왠지 조용하다 싶어 내려 가 보았더니 거지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越冬) 그 자리를 비워 두었던 것입니다. 가마때기는 그대로 처져 있었고 웬만한 집기들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이게 웬일이며 이게 웬 은혜입니까?” 하고 감사 기도를 드린 다음, 강가의 모래를 퍼 와서 땅을 다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이 추운 겨울에, 비록 다리 밑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살 수 있는 거처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모자원을 비우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새로운 집, 즉 다리 밑으로 가기 위해 이삿짐을 꾸리고 있을 그때,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고아원 원장이 권사님을 찾아오셨는데 이삿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게 되자 권사님은 처음엔 비밀로 하다가 자초지종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원장님은 “사실은 고아원에 침모(針母)가 필요해서 권사님을 모시러 왔다.”라면서 “다리 밑으로 가지 마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원으로 들어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원 권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겐 다리 밑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라면서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 가족들이 고아원에 들어간 후, 권사님은 교회를 위해 다시 철야 기도를 하셨는데, 새벽녘에 화장실을 다녀온 후 무릎을 꿇으려는데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이는 환상을 시간차로 보았는데 처음엔 까만 밥상 위에 두 개의 그릇이 보이더니 곧이어 시골에서 꼴을 써는 작두 두 개가 보였던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본 후 그날 아침 연세 드신 전도사님에게 이 환상에 관해 물었더니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건축헌금에 대한 응답이라 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권사님 아들 4명 중에 두 명을 목사로 세우시려나? ‘그릇’은 ‘너는 나의 택한 그릇’으로, ‘작두’는 ‘꼴을 먹이라’는 것으로 설명했던 것입니다.
원 권사님이 이 환상을 본지 30년 만에 그 환상이 이루어졌는데 권사님의 4명의 아들 중 두 명이 목사가 되었는데 그 두 아들 중 한 분은, 서울 광희문 감리교회에서 은퇴하신 유창진 목사님이시고, 또 한 사람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유양진 목사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원금죽 권사님은 나의 어머니이신데 그 일로 인해 우리는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나는 소위 고아원 출신입니다. 120여 명의 전쟁고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 고아원에서의 나의 삶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고아라서 고아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침모로 들어가신 어머니를 따라 고아원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고아원 원장은 전쟁고아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마당 전체를 장미꽃밭으로 꾸며 주었고, 그 옛날 방마다 스피커 장치를 해 놓고 동요와 성가곡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과 세계민요, 그리고 가곡과 행진곡풍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나마 사람다움이 있다면, 혹은 음악적으로나 또는 정서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면 그 고아원에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소위 ‘고아원 출신’이라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손가락질 당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고아원에서 자란 것을 지금까지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전쟁 통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머니가 교회 건축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집을 드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리 밑에서 살겠다는 어머니의 '정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그냥 두실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환상을 통해 어머니와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너의 아들 중 둘은 나의 '그릇'과 '도구'로 쓰겠노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와 약속하신 대로 2명의 목사는 물론, 어머니의 직계가족 중 7명이 목사가 되었고(그중 UMC 목사가 5명) 저의 막내아들도 이제 목사가 되면 8명의 목사가 세워지게 됩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참 이상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믿음의 장'이라 일컫는 11장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고, '믿음으로' 모세는 광야로 나갔고,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다고 했는데,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전혀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인 것이 드러났기에 광야로 도망을 갔고,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격하는 바로 왕의 군대를 보고 모세에게 "애급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냈습니까? 우리가 애급사람을 섬기는 것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라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지 결코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으로’ 야곱을 축복했고, 모세는 광야로 나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믿음으로’라는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야곱을 축복했고, 모세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광야로 나갔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홍해를 건넜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과 원망을 전혀 개의(介意)치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약속'한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셨던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그 자녀들은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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