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을 축하합니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어떨 땐 세월 저쪽으로 밀려난 듯했으나 문득 생각해 보니 밀려난 것이 아니라 세월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목사로 살아온 날들이 꽤 오래되었습니다. 벌써 은퇴한 나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번에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으니 모든 것이 새로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즈음 선배로서 목사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의 목회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즐거움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선 부부간의 삶이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친함과 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목사 부부는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사이가 좋아야 하고, 친해야 하고, 서로에게 편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부부간에 대화 부족으로 불행을 겪는 목사 부부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경험된 것은, 부부의 행복은 대화의 양(量)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행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해야 하지만 목사가정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행복은 감사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목사는, 삶 그 자체가 늘 행복해야 하고, 또한 목사는 행복한 얼굴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로 인하여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목사와 더불어 평(편)안함 속에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 목사는 상식선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상식선(線)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오히려 높은 차원의 삶일 것입니다. 그만큼 상식 이하의 삶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기도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목사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목사로 살아오면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모습을 말하라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자세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는, 그 어디에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굴해지지 않고 구차하게 살지도 않습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고, 또한 모든 것의 마침표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푯대로 삼고 온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음질하듯 갈보리 언덕을 향해야 합니다. 요즈음 작은 교회는 없애고 교회를 대형화(大型化)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무슨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는 세상 풍조를 따른다거나 세상 가치에 물들면 아니 됩니다. 목사는 성경의 가치관을 가지고 설교하는데, 교인들은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 설교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교인들은 성경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데, 목사가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설교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목사는 결코 설교의 수위를 낮추어선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고집해야 합니다. 세상사는 지혜는 중도노선이겠지만(한국의 어떤 정치인은 극중주의-極中主義-를 말하지만) 목사는 진리와 참(眞) 앞에선 미련하게도 흑백논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해야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어디서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옳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 안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교회의 고민이었는데, 이젠 그보다 ‘예수 안 믿는 목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더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물론 과학서적도, 철학서적도, 또는 전기물(傳記物)이나 위인전도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의 기원과 그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에 목사는 성경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보호 본능’이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보호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럴 때 목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슈네이즈 목사님의 말씀대로 ‘행위(doing)와 소유(having)가 존재(being)의 선행조건’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목사가 된 것은, 나의 존재의 결과요 힘이지, 존재를 유지시키는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모든 필요가 만족되었기에 목회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어떤 상황이든지 오늘이 즐겁고 그리고 이 길에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목사님,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복된 일인지 아십니까? 목사의 삶은 부담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축복이요 특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의 삶은 이 땅 위에서 그 이상을 능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없어야 합니다. 나의 조카 성일이가 미연합감리교회(UMC) 정회원 목사가 되어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EKUMC) 담임목사로 파송된 것을 부모 못지않게 기뻐하는 사람이 홈페이지에 들렸다가 흔적을 남깁니다. 한 번 더 임마누엘교회 부임을 축하합니다. 주안에서 승리하십시오. 작은아버지 유약진 목사가 보냅니다.
아롱마당 이야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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