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UMC)에서 은퇴하고 큰아들이 목회하고 있는 이곳 휴스턴에 정착한 지 벌써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휴스턴에 정착한 지 1년이 지날 즈음 곧이어 하와이에서 살던 둘째 아들 내외도 엄마 아빠가 있고 형이 있는 이곳 휴스턴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결혼한 지 8년 만에 지난 2021년 1월에 딸을 낳았는데 나에겐 큰손녀(희진)입니다. 그러니까 희진이는 나의 둘째 아들의 큰 딸입니다. 이제 4개월이 지나면 만으로 여섯 살이 됩니다. 희진이가 태어났을 땐 Covid-19가 창궐할 때였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땐 얼굴도 보지 못했고, 산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였으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두고와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희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처음 대면할 때의 그 기분은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설렘과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희진이를 처음 만나는 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샤워를 하고, 면도도 하고, 옷도 다 갈아입고, 정장하고, 넥타이도 매고, 향수도 약간 뿌리고…. 그리고 희진이를 위한 기도의 내용을 정리해서 집을 나섰는데 희진이를 만나는 것이 그가 태어난 후 오늘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들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파킹랏에 주차하고 대니얼 집으로 들어갈 때 마음이 뛰기 시작하는데 묘한 감정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표현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희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격에 북받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내외를 통해 이 땅에 보내 주신 그 손녀를 설레는 마음으로 품에 안았을 때 기절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우리 모두 둘러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희진이는 예수님과 같이 ‘그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누가복음 2:52) 그리고 세례요한이 태어난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장차 이 아이가 어찌 될꼬? 하면서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희진이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누가복음 1:66) ‘우리 희진이를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침 같게 하여 주옵시고’(예레미야 17:8) ‘희진이는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케 하옵시고’(시편 92:12-13) ‘그의 마음은 물 댄 동산 같게 하옵시며’(이사야 58:11) ‘그의 생은 단단한 벽에 잘 박힌 못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이사야 22:23) 그리고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균형 잡힌 희진이가 되게 하옵시고’ ‘주안에서 무병충실(無病充實)케 하여 주옵소서’ 기도 중간에 숨이 막혀 헉헉거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희진이는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으로 잘 자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간까지 희진이의 살아 있는 장난감으로써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 있는 큰 장난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그의 장난감이 되어주기를 그렇게 다짐했지만, 희진이는 시도 때도 없이 “할아버지 나랑 놀아 줘요!” 암, 얼마든지 놀아주고 말고…. 그런데 문제는 70대 후반으로 나이가 든 나로선 체력을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희진이와 놀다 보면 체력이 고갈되어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 와서는 금방 후회하곤 했습니다. 에이, 좀 더 놀아줄걸…. 그런데 놀아주면 지치고, 돌아오면 후회하고…. 이 같은 아쉬운 마음이 매번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여섯 살이 되었으니 그전보다 놀이 방식이 조금 달라졌고 체력소모가 좀 덜한 것 같아 이젠 ‘살아 있는 장난감’으로써의 임무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이제 10월이 되면 첫돌이 되는 둘째 은진이가 할아버지가 장난감이 되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부터 체력을 단련시켜야 할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과 함께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은진이를 보아하니 언니보다 더 단단한 것 같은데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진이 못지않게 얼마든지 살아 있는 장난감으로써 최선을 다할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덤으로 주어진 노년에 누릴 나의 복이라 생각하고 둘째 은진이와도 같이 놀아줄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엔 유치원이 개학하기 전에 희진이에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희진이를 만났을 땐 손녀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차원에서 만났지만, 이번엔 왠지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희진이로부터 허락을 받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희진이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희진아, 내일 아침에 맥도날드에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같이 데이트할까?” 그랬더니 눈망울을 굴리고 입술을 깨 물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랬더니 희진이는 흔쾌히 우리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8시에 희진이를 데리러 갔더니 희진이도 우리와 데이트하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머리띠를 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희진이와 함께 맥도날드에 가서 아침을 먹기 전 식사기도 할 때 깍지낀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목사인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식사기도 후 간단한 메뉴이지만 맛있게 아침을 먹고 우리랑 같이 맥도날드에 설치된 컴퓨터 놀이를 한참 하고 난 뒤 Petco(반려동물소매업체)에 들러 새와 물고기, 그리고 햄스터를 비롯해 온갖 동물들을 구경하고 놀다가 Play Ground에 가서 좀 더 같이 놀다가 점심을 먹이고 집에 데려다줌으로 그날 꿈같은 손녀와의 정식 데이트를 마감했는데 희진이와의 데이트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서점에 들렀을 때 ‘눈앞에 있어도 그리운 여자’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제목대로 희진이는 내 눈앞에 있어도 그립고 보고 싶은 아이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도시간 때마다 희진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간혹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울컥하면서 콧등이 시큰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내 손녀라 그런지 마음도 곱고 그 어린 성품에 엄마 아빠와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생 은진이를 위하는 마음 역시 눈여겨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잠언서엔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아이라 하더라도 자기 행위로 사람됨을 드러낸다. 그가 하는 행실을 보면 그가 깨끗한지 더러운지 올바른지 그른지 알 수 있다.’(잠20:11)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희진이를 더 귀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동생 은진이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희진이는 은진이가 깰까 봐 집게손가락을 세워 자기 입술에 갖다 대고 “쉿!”할 뿐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으면서 눈을 흘기는 데 언니로서 동생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삭이듯 “은진이가 예뻐?”라고 물었더니 희진이 역시 속삭이듯 “응, 예뻐!”라고 대답하기에 “어디가 제일 예쁜데?”라고 물었더니 “다 예뻐!”라고 대답할 때 그 순간 콧등이 시큰거렸습니다. 아마 그 목소리와 표정은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희진이는 동생 은진이를 잘 돌보고 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 내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엄마 아빠가 희진이를 우리에게 맡기고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돌아올 때까지 두 주간 희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희진이와 함께 있는 하루 스물네 시간은 나에겐 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도대체 한번 놀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니 나의 체력이 그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되자 잘 때가 넘었는데 잠 때를 놓쳤는지 밤 12시가 되었는데도 잠을 자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지쳐서 깜박 잠이 들면 “할아버지, 나랑 놀아 줘요.”라면서 양팔로 헤드락을 걸고 목을 죄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희진이를 잠시 안정시킨 다음 희진이가 알아들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해 보았습니다.
“희진아, 할아버지가 너무 피곤한데 이제 할아버지 방에 가서 자도 돼?” 그러자 희진이는 아주 단호하게 “아니, 나랑 좀 더 놀아 돼!”라고 해서 조금 있다가 “희진아, 내 말 들어봐. 할아버지는 희진이가 너무 예뻐. 희진이는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입도 이쁘고, 마음도 이쁘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희진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이뻐서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러면 할아버지는 너무 피곤해서 내일 희진이랑 같이 놀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지금 내가 할아버지 방에 가서 자면 예쁜 희진이를 보지 못해 금방 잠을 잘 수가 있거든? 그러면 내일 희진이랑 같이 놀아 줄 수 있을 텐데 할아버지 방에 가도 될까?” 짧게 생각하느라 그런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응, 할아버지 가도 돼!” 아주 흔쾌히 대답하면서 나를 놓아주었습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희진이에게 했던 그 말을 정말 이해하고 나를 놓아주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데 이 장면도 잊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희진이는 한국말을 곧잘 합니다. 나는 희진이 아빠가 한국말이 완벽하지 못하지만, 우리와 대화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희진이가 한국말 하는 것은 아빠로부터 시작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가 한국말을 가르쳤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둘째 며느리는 일본 여자입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탓인지 희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쳤습니다. 물론 희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본인이 먼저 한글학교에 등록하고 6개월 동안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짧은 기간에 웬만한 한국말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희진이에게 먼저 한국말을 하게 한 다음 일본말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희진이가 Pre-School(CMS)에 다닐 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 아이를 위해 선생님에게 영어로 통역해 주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일본 아이를 위해서도 선생님에게 영어로 통역해 준다면서 선생님이 희진이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참으로 듣기에 좋았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상황인데 엄마에게 말할 땐 일본 말로, 아빠하고 말할 땐 영어로, 그리고 우리와 말할 땐 정확한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그동안 큰며느리든 작은 며느리든 그들이 우리 집에 올 때 나는 반바지나 러닝셔츠 차림으로 그들을 맞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양말을 벗고 맨발을 내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희진이가 우리 집에 올 때도 반바지 차림이나 셔츠차림으로 그리고 맨발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며느리라 해도 그리고 어린 손녀라 해도 ‘여자’에 대한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겠다는 나의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 집에 올 땐 반드시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한 다음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희진이와 은진이가 예수님처럼 자라면서 몸이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족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어렸을 때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신 것처럼(누가복음 2:40, 52) 우리 희진이와 은진이도 예수님처럼 자라나기를 바라고, 이들이 자라날 때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어린 날을 위해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희진이와의 데이트로 이 아이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나 개인의 역사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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