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3월 마지막 주간부터 4월 말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처음엔 큰손녀 희진이가 고열과 기침과 두통으로 Urgent Care와 응급실(ER)에 다녀오는 등 힘든 과정이 있었습니다. 더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희진이 뒤를 이어 생후 5개월 된 둘째 손녀 은진이가 RSV(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Urgent Care와 ER에 다녀오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은진이가 며칠이 지나면서 열이 내리고 기침도 잦아지고 숨 쉴 때마다 컹컹거리는 소리와 쌕쌕거리는 소리도 잦아지더니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같아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 나은 줄 알았던 희진이가 또다시 고열과 기침과 구토로 Urgent Care와 ER에 다녀오는 등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희진이가 좀 나아지는가 했더니 이번엔 은진이가 또 RSV로 Urgent Care와 ER에 다녀왔는데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냥 잘 살피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은진이가 숨 쉬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왔으니 우리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자신의 의지로 숨 쉬는 걸 포기할 수가 있습니까?
의사의 진단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RSV가 5개월 미만 신생아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대니얼이 당황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니얼이 불안해서 그런지 우리를 불렀습니다. 그냥 와서 우리 곁에만 있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화를 받고 대니얼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 은진이가 숨 쉬는 걸 포기할까 봐 무서워!”라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기도로 안정을 시킨 다음, 대니얼 내외에게 하나님이 필요하신 때가 되었다 싶어서 아버지인 목사로서 몇 가지 권면을 했는데 대니얼 눈과 표정을 보니까 이 아빠와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휘몰아친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다음과 같이 권면하기 시작했습니다.
1.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라.
어떤 아빠가 모처럼 낚시하러 차에 배를 싣고 어린 딸을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 아빠는 딸과 함께 배를 타고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바위틈에서 낚시를 드리웠으나 입질이 없어서 아빠는 딸을 바위 위에 잠시 내려놓고 저쪽에 고기가 있는지 금방 살피고 오리라 생각을 하고 아빠는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낚시를 드리웠는데 낚시를 드리우자마자 고기가 물기 시작했다. 이 아빠는 한두 마리만 잡아 올리고 딸을 데리러 가려 했으나 그만 정신없이 고기를 잡아 올리느라 시간이 지난 줄 모르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아차! 바위에 앉혀 놓은 딸이 생각나서 황급히 배를 돌려 딸을 앉혀 두었던 곳으로 왔으나 바위가 보이지 않았다.
이 아빠는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려 물 때(밀물)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딸은 점점 불어나는 물을 보며 아빠를 불렀으나 아빠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람에 딸이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아빠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하려면, 기도하는 것과 성경 읽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이 세 가지는 필수조건임을 잊어선 안 된다.
2. 허리케인(태풍)
내가 아는 한, 우리의 영혼에 비(고난)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절대로 햇빛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매일 맑고 유쾌한 날씨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간간이 비가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로는 소나기와 강력한 태풍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때론 우리가 원치 않는 태풍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 태풍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과학자들의 설명은 재미있다. 태풍은 지구 전체를 보았을 때, 한쪽으로 치우친 에너지를 전체화시키기 위한 자연 발생적이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신의 섭리’로 표현하고 있다.
태풍은 우리에게 큰 피해를 남겨 놓지만, 사실 태풍에 의해 모든 자연계가 새로운 질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태풍에 의해 홍수가 나면, 이 홍수로 인해 둑이 무너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홍수가 지나간 다음 주변의 평지에 흙모래가 넓게 깔리게 된다. 이렇게 홍수로 인해 강물이 범람한 땅은 비옥하여, 옛날부터 농지로 활용되었고, 그 비옥한 땅에서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기도 했다. 태풍은 자연재해가 분명하지만, 동시에 가장 영양이 많은 비옥한 흙을 가져다주는, 하늘이 내린 복이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 비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절대로 햇빛을 주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두면 우리의 삶이 회복 불능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때론 바람과 비와 소나기, 그리고 태풍을 즉, 고난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바람과 소나기와 태풍을 통해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전체로 분산시켜서 균형을 잡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태풍(고난)이 일어나면, 그 홍수(고난)에 의해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의 ‘영적 상태’가 마치 토사(土砂)가 넓게 깔려 지형을 바꾸고 비옥한 땅이 농지로 활용될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는 것처럼 고난은 우리에게 ‘특별함’이 주어지기 때문에 긴장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여겨야 한다. 그러니까 이 고난(어려운 환경)은, 우리를 피폐(疲弊)케 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우리의 가정을 거룩한 믿음 위에 든든히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지금 희진이와 은진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가장 중요한 때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너의 가정에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이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태풍(고난)이 지나간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기 때문에 온몸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그리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시119:71) 그러므로 태풍(고난)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의 비밀’이라 부른다.
3. 잠언을 읽어라.
한국의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돈이 많은 사람이라 우리가 어렸을 때 그를 ‘돈병철’이라 불렀다. 그가 아들 ‘이건희’에게 삼성그룹을 물려줄 때 ‘논어’(論語)와 함께 회사를 물려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논어’라는 책은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는데 삶의 지혜와, 인간관계 즉, 가까이할 사람과 멀리해야 할 사람을 가리는 책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다. 그 성경 가운데 특히 잠언은, 논어와는 비교 불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잠언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솔로몬 왕이 남긴 말이다.
‘잠언’(箴言)이란 말은, ‘짧고 간결한 교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 말로는 ‘격언’과 ‘속담’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로서 ‘箴’은 ‘바늘 잠’인데 ‘바늘로 찌른다’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잠언’이란 성경은, ‘바늘로 찌르는 말’ 혹은, ‘골수에 사무치는’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를 인간관계는 물론, 우리를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경계하고 일깨워 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잠언 1장 1절-6절 까지는,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이며, 이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7절은, 솔로몬의 최초의 잠언인데 그것은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다.(잠1:7) 희진이와 은진이에게도 이 잠언을 읽혀야 하는 것은 물론, 너희들도 읽어야 한다. 이 잠언은 총 31장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한 달이면 한 번을 읽고 일 년이면 열두 번을 읽는다. 물론 성경은 골고루 읽어야 하지만, 잠언은 하루에 꼭 한 장씩 ‘의무적’으로 읽도록 해야 한다. 나도 그날 다른 성경을 읽지 못하면 그 날짜의 잠언을 반드시 읽는다. 잠언은 너희들에게 특별한 은혜, 그리고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잠언을 가까이해라. 그리고 희진이와 은진이에게 잠언을 읽혀라.
4. 의관정제(衣冠整齊)
‘의관정제’란, 왕조시대 때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조정(朝廷)에 나아갈 때 의관(衣冠)을 갖추고 왕 앞에 나아갔다. 그것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의관을 갖추어야만 했다. 어찌 감히 제 마음대로 아무 옷이나 입고 왕 앞에 나아갈 수가 있겠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이러해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나아올 때 예복을 갖추라’고 하셨다. 우리가 어찌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나? 그래서 율법학자들의 구전과 해설을 집대성한 탈무드(Talmud)엔 ‘사람은 자기 마을(邑)에서는 평판에 따라 판단되지만, 딴 마을에서는 의복에 따라 판단된다’라고 자녀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내가 서울에 들렀을 때 어느 선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하룻밤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새롭다. 그날 저녁에 150여 명의 교인이 모였는데 남자 교인들은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고 여자 교인들 역시 정장 차림이었다.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 정장을 입은 150여 명의 교인의 그 반듯한 모습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예복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그 분위기를 잊지 못하고 있다. 100명의 완전 군장한 군인들이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하는 것과, 일반인들이 100명 걸어가는 모습과 비교되는 것 같았다. ‘뭐, 아무렇게나 입으면 어때?’라고 말할 수 있으나 아니다. 우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희진이와 은진이에게 ‘비싼 옷’이 아닌 ‘깨끗한 옷’을 ‘단정하게’ 입혀 교회로 보내야 한다.
5. 아벨의 제사.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라고 성경은 말했다.(히브리서 11:4) 이 내용은 창세기 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벨은 ‘양 떼 가운데 갓 태어난 가장 살지고 부드러운 새끼 양을 골라 바쳤다.’라고 했으나 가인은 ‘밭에서 거둔 소산을 제물로 삼아 드렸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가인이 드린 제물엔 형용된 제물이 아니었다. 가인은 ‘아무렇게나’ 드렸으나 히브리서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라고 평가해 버렸다.
이 아빠가 어렸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밀양 할머니가 ‘좀 더 나은 예배’를 위해 할머니는 토요일 밤이 되면 깨끗한 옷을 준비했고 구겨진 지폐를 다리미로 다린 돈을 손에 쥐여주며 교회에 가서 헌금하게 하셨다. 너는 희진이와 은진이와 함께 모든 일에 아벨과 같이 ‘모든 면’에 하나님 앞에서 ‘좀 더 나음’을 위한 삶을 가르치고 마음을 써야 한다. 우선 너희들이 본을 보여야 한다.
6. 고센 땅
이 ‘고센 땅’은, 가나안 땅에 7년 동안 대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의 총리(總理)였던 요셉의 초청으로 아버지 야곱을 비롯해 그의 가족 70명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해 와서 거주하던 지역이었고 ‘출애굽기서’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고센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웠으면,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에 나가 40년 사는 동안 이 땅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던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반역을 일삼았던 그곳이 바로 이 고센 땅이었다. 이들이 처음 고센 땅을 밟았을 때 그 비옥한 땅에서 영주(永住)하자는 게 아니라 기근을 피하고자 ‘잠시 머물겠다’(寓居)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기근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무려 430년이나 ‘고센 땅’에 머물게 된다.
세월이 지나자 아버지 야곱(이스라엘)을 비롯해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땅에 묻혔다. 이렇게 되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Pharaoh) 왕’이 일어나 애굽을 통치하게 되었는데 새로 등극한 ‘바로 왕’은 애굽에 이스라엘 백성의 중다(衆多)함을 보고 이미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착취하지만,(출1:6-11)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모세의 출생이었고 바로 왕의 딸은 나일강에서 모세를 건져 양아들로 삼고 궁중(宮中)에서 바로 왕의 뒤를 이을 왕의 재목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후 성경의 역사는, 호렙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되는데, 성경의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출애굽의 주역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모세는 다만, ‘출애굽’이란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호렙산에서 지팡이 하나를 손에 잡고 내려온 모세는 ‘바로 왕’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부터 출애굽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아빠는 평생을 살면서 성지순례는 물론 한국과 미국 이외에 다른 나라를 가 본 적이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단기선교팀과 함께 멕시코를 방문한 것과 하와이에서 한국을 방문할 때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일본 나리타 공항에 잠시 머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고센 땅’이란 제목의 칼럼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Google을 통해 고센 땅을 찾아보았는데 그동안 목회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지명(地名)은 성경 뒤에 부착된 지도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고센 땅을 찾아보면서 나의 삶에 있어서 ‘새로움’이 더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엄마와 아빠를 통해 너와 형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품에 안겨주셨고, 그리고 너희들은 결혼했고 형에겐 나다나엘(입양)이, 너에겐 희진이와 은진이를 주셨다.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나의 유일한 피붙이다. 나는 아버지로서 너희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여 나 혼자서 너희들을 보호할 수도 지킬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다가 깨는 시간’과 ‘해동기’(해 있을 동안 기도)를 통해 너희들을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시간은 내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너희들이 참혹한 역사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앉아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어떤 ‘괴물’에 의해 일어날지도 모를 그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기도 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바로 ‘고센 땅’이었다.
성경의 역사는, 모세가 ‘바로 왕’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두고 처절한 갈등을 겪을 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 땅을 초토화시켰다. 그것은,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개구리 소동’, ‘이 소동’, ‘파리 소동’, ‘집짐승의 죽음’, ‘피부병 전염’, ‘우박’, ‘메뚜기 소동’, ‘흑암’, 그리고 ‘처음 난 것의 죽음’ 등이다.(출7:14-12:36)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애굽 전역에 이 열 가지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이 재앙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출8:23)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열 가지 재앙 중 고센 땅에 피해가 미치지 못했던 ‘특정된 재앙’은 * 파리 소동(출8:20-24) * 집짐승들의 죽음(출9:4-6) * 우박(출9:22-26) * 흑암, 이 흑암에 의해 ‘사흘 동안 짙은 어두움이 애굽의 온 땅을 덮을 때 사람들은 서로 볼 수도 없었고 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으나,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 땅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었다’라고 했다.(출10:21-23) * 그리고 마지막 재앙이었던 장자의 죽음 역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무도 해를 입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고센 땅’은 이제 나의 기도 제목이 되었다. 내가 사는 날 동안은 물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다하고 이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긴 후에라도, 그리고 세상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그리고 너희들이 사는 그곳이 바로 ‘고센 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센 땅은 ‘어느 장소’가 아니라 ‘너희들이 있는, 너희들이 사는 그곳이 바로 고센 땅’이 되는 것이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시91:5-7) 이 말씀이 내 마음에 각인(刻印)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아빠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데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는데 이 트럭은 길 건너 어느 집 벽을 뚫고 들어가 툇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그 차에 치여 죽는 일이 있었다. 이 사고로 정작 죽었어야 할 아이는 멀쩡했으나 아무것도 모른 채 점심을 먹고 있던 아이가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운명’이란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년(2025년) 7월에 ‘Kerrville’ 지역에 갑자기 불어난 홍수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는데 특히 30여 명의 어린아이가 한꺼번에 참사를 당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상치 못한 피해와 사고는 처처에서 일어나고 이런 상황에서 너희를 향한 나의 소박한 바람이지만, 애굽 땅에 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하던 ‘고센 땅’엔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것처럼, 너희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이 ‘고센 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솔로몬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잠27:1)라고 했다.
나의 둘째 아들 대니얼이 이번 희진이와 은진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상황에 정신을 잃을 뻔했으나 이 기회에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대니얼과 그의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고 돌아왔습니다. 흔히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겠지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넉넉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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