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가수 나훈아 씨의 모창 가수인 ‘너훈아’ 씨가 인터뷰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외모도 나훈아 씨와 많이 닮아 있었고, 또 너훈아 씨의 노래를 오디오로만 듣는다면 누가 진짜 나훈아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 가운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자신은 나훈아를 닮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나훈아 씨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의 얼굴을 닮으려 했고, 수천, 수만 번 녹음기를 틀어 놓고 나훈아의 말투와 음성을 닮으려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의 생각마저 닮으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혹시, 나훈아 씨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까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고백을 들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목사로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한 번은, 정호승 씨가 쓴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라는 시를 접하게 되었는데, 너훈아 씨의 고백과 함께 충격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리고 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 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 봐 두려워라. 가수 한 사람을 흉내 내며 사는 것이 자신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고 해서, 그 가수의 언행심사(言行心思)를 닮으려 최선을 다했던 너훈아 씨의 그 모습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가져보았습니다. 또 윤동주의 시를 자기 삶의 지침서로 삼았으나, 한순간 자신의 마음을 놓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시로 표현한 정호승 시인의 마음을 읽었을 때, 역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유행가 가수나 어느 시인의 가르침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삼고 사는 사람(목사)인데, 나의 삶 속에 그분의 주(主)가 되심이 어디 있는지 저들의 고백을 들을 때 민망한 마음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主)가 되신다면 나는 당연히 그의 종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은 당연히 그분을 닮아 있어야 하고, 또한 그분의 가르침과 명하신 대로 살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언행(言行)에 표리부동(表裏不同)함을 보이니, 예수님의 책망을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눅6:46) 모창 가수인 너훈아 씨와 시인 정호승 씨에 의해,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롱마당 이야기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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