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제사장에겐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말할 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불량(不良)자라 했고,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들이었으나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가로챘고, 성전에서 시중드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하면서 성소(聖所)를 더럽힌 패륜(悖倫)을 저지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경고도 하셨지만, 끝내 악의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한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에서 죽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제사장도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했습니다.(삼상2장-4장)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엘리제사장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가문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엄격한 가정교육을 통해 성장했을 텐데, 왜 이토록 패륜을 일삼다가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이런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유)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자식들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서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분노를 느낀 자녀들은, 그 분노가 곧 상처가 되어 평생토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자녀들이 부모로 인해 갖는 분노는, 그 자녀의 모든 것을 피폐(疲弊)케 할 뿐 아니라, 그 누구도 파(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불행한 삶이 그를 지배하게 되는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가 비록 제사장이긴 했으나 아버지의 이중적인, 그리고 위선적(僞善的)인 그 무엇을 보았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도무지 존경할 수 없는 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타락과 패륜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들이 패륜아가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인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출애굽 시켰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됨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자들이었습니다. 출애굽에서부터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그들이, 엘리제사장을 무시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께서 이들에게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타락과 패륜으로 그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땐, 요즈음과는 달리 목사님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난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아버지가 목사이긴 하지만 결코 존경할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와 같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맹세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비상식적이고 비인격적인 삶을 책으로 써서 만천하에 공개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목사인 아버지가 교인들로부터 인격(간)적인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목사가 되는 것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반항심에 의해 타락의 길에 들어서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를 여럿 보았습니다. 고향에 있는 어느 교회 목사님 아들이 아버지가 교인들로부터 인격(간)적으로 수모(受侮)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교인들에 대한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교회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교회로 들어가는 교인들, 특히 장로들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어 대면서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니체는 그의 나이 6살 때 목사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자 교인들은 어머니에게 주택을 비워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는 어머니는 주택을 비울 수 있는 말미(末尾)를 달라고 통사정했으나 교인들은 후임 목사를 위해 주택을 비우도록 했던 것입니다.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니체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교인들에 의해 쫓겨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모습을 니체는 평생 잊지 못했고, 그의 사신학(死神學)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불행은 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와 우리가 취한 그 행동 하나가 원인이 되어 믿음의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로 인해 그 인생과 영혼이 망가지는 자녀들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엡6:4) ‘소년법개정’ 논의를 불러온 부산 여중생들의 폭행 사건을 비롯, 그 또래들이 저지르는 폭행, 살인, 사체유기 등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성인도 저지르기 힘든 폭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괴물’이 아닌 13살 14살 정도 되는 청순하고 가녀린 ‘소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괴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이런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길러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편적으로,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아는 없고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사과는 사과나무 밑에 떨어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 크고 굉장한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앙생활에 있어서만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영예를 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롱마당 이야기
홉니와 비느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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