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120여 명의 전쟁고아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땐 대부분 미국에서의 원조(援助)로 살아갈 때였는데 많은 원조품 가운데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종종 들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빙고(Bingo) 게임이었습니다.(가로세로 또는 사선으로 한 줄에 5개의 숫자를 남보다 먼저 뽑아낸 사람이 이기는 게임) 지금부터 60여 년 전의 빙고 게임은 우리의 놀이문화로선 그 개념 자체가 없을 때였으니, 과연 그 빙고 게임은 독보적이었습니다. 바깥에 가지고 갈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 반(중학교 3학년) 아이들은 이 새로운 게임을 통해 반 분위기가 달라졌음은 물론, 다른 반 아이들까지 내 곁으로 몰려왔으니 내가 누리는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가장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그 빙고 게임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반출할 수 없는 물건이긴 했지만,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 주었던 그 친구를 생각하면, 이 빙고 게임은 그에게 신세 갚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아마 귀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빙고 게임을 밀반출한 지 사흘도 되지 않아 집안 전체가 난리 났습니다. 빙고 게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범인색출에 나섰습니다. 그 당시 단체 기합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잔인하고 무서운 것들이었습니다. 몽둥이로 맞아 엉덩이가 터지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전기고문까지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범인색출의 장(場)이 열리면 그 상황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한 줄기 희망이 보였습니다. 범인색출을 위해 쪽지를 나눠주면서 ‘이번 빙고 게임 건(件)은 자수만 하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수(自首)하는 그 즉시 용서된다’라고도 했습니다. 물론 ‘비밀을 지켜 준다’는 것까지 약속하면서 이름을 적어 내도록 했습니다. 귀신도 모르게 처분한 빙고 게임은, 내가 시치미만 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고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나 때문에 형들이나 다른 아이들이 기합을 받고 몽둥이질 당하고 고문을 당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약속을’ 믿고 단번에 이름을 적어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 원장의 먼 친척뻘 되시는 나 씨 성을 가지신 분이 총무(總務)로 있었는데 그에게 불려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양진이 네가 도둑놈이었구나!” 온갖 욕설로부터 시작하여 빙고 게임을 처분(자수)한 데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때 나는 맞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총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와 눈이 마주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양진이 저놈은 도둑놈!”이란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시간에(그땐 매일 아침 6시에 예배가 있었음) 그분이, 그것도 ‘용서와 사랑’에 관한 설교를 하는 중이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질과 함께 “양진이 저놈은 도둑놈!”이라고 하는 바람에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 약속을 믿었다가 크게 낭패(?)를 당한 셈이었습니다. 그때 두들겨 맞으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리고 또 억울(?)했던 것은, 자수하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는데, 그리고 ‘그 즉시 용서가 된다’라고 약속했는데, 그리고 ‘비밀을 지키겠다’라고 약속했는데 그 모든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억울하고 씁쓸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빙고 게임을 훔쳐간 ‘도둑놈’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그래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었는데 결국 그 약속을 믿은 나만 어리석고 미련한 놈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동안 많이 들었던 설교 중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하셨고’(요한1서 1:9) ‘오라! 우리 한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될 것이며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될 것이라' 하셨고(사1:18) ‘그 죄를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옮기실 뿐 아니라’(시103:12)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예레미야31:34)라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어도 되는 건지, 그래서 한때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씀들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해 마음이 평온하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의 기원과 그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다루신 책인 만큼 ‘용서’에 관한 말씀은 성경 전체에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용서에 대해 사람들은 함정(陷穽)을 파 놓고 속임수를 쓰고 약속을 지키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흘리신 거룩한 피(寶血)를 두고 약속하신 것인 만큼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고 영원할 것입니다. ‘잘 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주신 그 사람은 행복하다!’(시32:1)라고 다윗이 고백했는데, 우리가 예수 믿는 자들이라면 주안에서 이런 행복을 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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