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목회할 때, 해마다 성찬용 포도주를 담았는데 그 포도주는 여선교회에서 담당했습니다. 그중에 목소리 큰 회장이 주로 포도주를 담았는데 대부분 회원들이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못마땅했던 이유는, 포도가 막 출하(出荷)될 때는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고, 끝마무리 때를 기다렸다가 싼값에 사서 그것도 대충 물에 씻어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정성 없이 포도주 담그는 것을 옆에서 본 어떤 권사님이 다음엔 자신이 담그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엔 그 권사님이 포도주를 담았는데, 그는 포도가 출하되기를 기다렸다가 특상품만을 골라 깨끗한 수건으로 포도알 하나하나를 닦아 정성껏 담그기에 그다음 성찬식은 당연히 그 포도주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사람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성찬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 자세가 문제일 것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목회할 때 집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남편이 카펫을 교회로 가져갈 텐데 교회를 위해 쓰라는 전화였습니다. 교회에 카펫 쓸 일이 없긴 했으나 그래도 교회로 보낸 카펫을 받기 위해 주차장에서 그 집사님의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의 남편이 차에서 내리는 카펫을 보니 자기 집에서 쓰던 카펫이 낡고 더러워지게 되자 새 카펫으로 갈고 더러워진 그 카펫을 교회에 갖다 주면서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더러워진 카펫을 보고 평생 목회하는 동안 그때처럼 교인에 대해 화를 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 역시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교회를 대하는 그 집사님의 마음 자세가 문제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목회할 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지방에 속한 어느 교회가 건축 중이었는데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물론 공사 중이긴 했지만, 그 교회 수석 장로가 볼 일이 급했는지 건물 한쪽 구석에 서서 소변을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장로가 서서 소변보는 곳은 제단(祭壇) 쪽이었습니다. “장로님! 이 건물이 장로님의 집이라면 아무리 공사 중이라도 장로님 머리를 두는 안방에다가 오줌 누겠습니까?” 그런데 그 장로의 반응은 “공사 중인데 뭐 어떻습니까?”라고 변명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憤)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돌은 채석장에서 잘 다듬어 낸 것을 썼기 때문에 막상 성전을 지을 때는 망치나 정 등, 쇠로 만든 어떠한 연장 소리도 성전 안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왕상6:7) 솔로몬과 장로가 이런 차이를 보인 것은 사람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성전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 자세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방법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습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해만 되면, 그리고 자신에게 옳으면 그것이 곧 선(善)이고, 진리(眞理)이고, 참(眞)이 되는 것입니다. 단종(端宗)이란 역사적 사실 앞에 다양한 삶이 있었습니다. 성삼문(成三問)을 비롯한 사육신(死六臣)은 죽음으로써 그 인생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신숙주(申叔舟)와 정인지(鄭麟趾)와 같은 삶도 있었습니다.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른지 그 역사적 사실 앞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주님의 날(일요일)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날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도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날을 쉬는 날, 청소하는 날, 빨래하는 날, 잔디 깎는 날, 그리고 그동안 밀린 것을 정리하는 날로 여기지만, 어떤 사람은 이날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날로 여기고, 이날을 저 날들과 성별(聖別)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롬14:5)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답은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所見)대로, 자기에게 옳은 대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사사기21:25) 이 세상엔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절대 신앙과 절대 불신앙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요소를 불신앙으로 덮어버리면 그것이 불신앙이 되고, 불신앙적인 요소를 신앙으로 덮어버리면 그것이 곧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모든 가치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다음은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오늘 이 하루를, 내 임의(任意, 所見)대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일일이 카운트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전11:9) 그리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7)
아롱마당 이야기
성찬용(聖餐用)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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