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회 초년시절인 전도사 때부터 ‘싸움닭’이었습니다. 교역자(敎役者) 회의를 비롯한 목회자들의 모임에 나갈 때마다 아내가 “오늘은 제발 목사님들과 다투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오세요.”라며 신신당부(申申當付)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목회’의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지방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교통정리 하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보편적 상식에서 ‘옳지 않다’라고 생각되는 문제는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선배이든 감리사이든 상식적이지 못할 땐 거침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해 교역자 회의 때 난장판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속한 지방(District)은 ‘경북동지방’이었는데 지방의 범위가 너무 넓었습니다. 이번 교역자 회의는 포항에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점촌교회에서 열렸는데 3개월마다 한 번씩 열리는 여선교회 ‘계삭회’와 겸하여 모이는 회의였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 당시 경주교회가 소유한 25인 승 밴을 타고 점촌교회로 향했습니다. 거기엔 나를 포함한 우리 교회 교인과, ‘경주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 그리고 포항에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A’ 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한 차를 타고 점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출발할 때와 같은 인원이 경주교회 차를 타고 점촌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주교회 담임목사가, 목사들만이 모이는 교역자 회의에서 나눈 모든 대화를 동승한 교인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마치 영웅담을 털어놓듯 했습니다. 경주교회 담임목사와 A 교회 담임목사는 특별한 관계였고 A 교회는 경주교회가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A’ 교회와 ‘포항중앙교회’와의 관계는 적대(?)관계였습니다. 그동안 이 두 교회로 인해 경북동지방으로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교역자 회의는 이 두 교회의 해결방안을 논의한 자리였는데 회의 석상에서 A 교회 담임목사와 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 간에 언성을 높이는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되었는데 그 상황에서 경주교회 담임목사가 A 교회 딤임목사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결코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미제(未濟)로 남겨둔 채 전체 회의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경주교회 담임목사가 그 회의에서 있었던 모든 상황을 떠벌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교역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A 교회 교인들과 경주교회 교인들이 경주교회 목사의 말을 듣고 흥분하면서 포항중앙교회 목사를 난도질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맨 뒤에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함께 참석했던 우리교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운전석까지 가서 “기사님, 여기 차 좀 세워주세요.”라고 했더니 경주교회 담임목사가 “차를 왜 세우나? 흥해까지 가려면 멀 텐데….” “목사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목사들끼리 나눈 대화를 여기서 이렇게 까발려도 됩니까? 내가 어떻게 이 차를 타고 갈 수 있습니까?” 차를 세우게 한 후 우리 교인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고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지만, 택시를 대절해서 흥해까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이 일로 지방 내 ‘대단한 사람’으로 유명(?)인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이민 길에 올랐는데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국에 가서는 제발 손윗분들과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나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한 번의 기도로 싸움닭이 되지 않으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나의 이 겁 없는 성향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연히 옳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는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의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해선 그가 누구이든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장기금식을 통해,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서 어느덧 꼭 나서야 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선배 목사님이 나의 어깨를 툭 치면서 “유 목사, 요즘 성질 다 죽었나 봐!” 그 말을 듣고 나의 본성에서 벗어난 것 같아 나 자신이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 중에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할 문제, 꼭 말을 해야 했을 그 상황에 대해 ‘차마’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내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1. 어느 교회에서 하룻밤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후 2부 순서로 ‘가족찬양경연대회’가 있었는데 13가정 정도가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등수도 발표되고 시상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모든 순서는 끝이 났지만, 교인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는 경연대회에 참석했던 모든 가정의 찬양을 녹음했는데 처음부터 차례대로 틀지 않고 중간 정도 순서에 그 교회 수석(?)장로 가정이 찬양했는데 담임목사는 녹음된 순서를 무시하고 장로 가정이 부른 그 부분만 반복해서 트는 것을 보고 이게 뭔가 하고 민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교인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데 장로님 가정이 부른 노래만 틀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그 교회를 떠났는데 그 담임목사의 ‘비굴한’ 마음을 질타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2. 하와이에서 목회할 때 부산 호산나 교회(당시 최홍준 목사)에 초청되어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산나 교회가 새로 건축하고 옮기기 전이었으니까 약 20여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주일 저녁 설교였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당을 꽉 메운 가운데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시작한 지 20분도 채 되기 전에 누군가가 강대상에 쪽지를 올려놓았습니다. ‘뒷 순서가 있는데 설교를 간단히 마쳐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메모지였습니다. 그 메모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머리는 하얘졌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거 뭐 하는 짓입니까? 그렇다면 설교하기 전에 미리 설교의 시간을 정해 주셔야지 나는 대 호산나 교회 설교자로 초청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해 왔는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식으로 설교를 마쳐달라고 하는 이런 무례함이 어디 있느냐?”라면서 당장 설교원고를 챙겨 강대상에서 내려오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설교를 ‘대충’ 마무리하고 서둘러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내 설교가 시원찮아서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어서였는지 최홍준 목사에게 끝내 물어보지 못하고 헤어진 아쉬움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3.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산 해운대에 있는 온누리교회(당시 정양희 감독)에서 주일 낮 예배 때 설교하고 저녁엔 ‘해운대지역 교회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연합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연합집회 강사는 부산 포도원 교회 김문훈 목사였습니다. 김 목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간혹 YouTube에 올라온 동영상을 통해 그의 설교를 듣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칠판에 글을 쓰면서 설교인지 강의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런 설교는 내 성향(?)에 맞지 않아 더 이상 듣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교회 차세대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유명(능)한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온누리교회에서 연합집회 강사로 초대되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그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 전에 교회에 들어섰는데 방송국에서 나왔는지 몇몇 사람들이 강단 오른쪽에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에 필요한 기기(器機)들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별스럽게 유난을 떨고 있네….’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순서가 지난 후 김문훈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강사 목사는 당연히 회중석을 바라보고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강단 오른쪽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 칠판에 글을 써가며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설교하는 그 내용을 자신이 운영하는 YouTube에 올리기 위해 녹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교인들이 김문훈 목사의 ‘부흥회 인도하는 방법’에 익숙해졌는지 그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당장 손을 들고 “목사님, 설교는 회중을 보고 해야지 강단에 설치한 카메라를 보고 설교하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이냐?”라고 그 상황을 뒤집어 버리고 싶었으나 미국 촌놈이 용기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문화적 차이인지 모르지만, 그 상황을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차마’ 설교를 중단시키지 못했는데 그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최 측에서도 그러하고 교인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런 상황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땐 경찰과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한국 경찰을 인정 할 수 없다’(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라면서 격한 반응을 보인적이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묻기를 “그럼, 대한민국 경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예, 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이 나의 멱살을 잡고 “이새끼 빨갱이네!”라면서 ‘빨갱이’로 낙인찍혀 사상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밀양 유지들의 탄원으로 풀려날 정도로 막무가내였고, 만약 이번 연회(年會) 때 K 목사(앞에서 말한 경주교회 딤임)가 감독이 되면 난 감리교회를 탈퇴할 것이라며 공공연하게 발언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 K 목사가 감독되기 전에 한국을 떠났지만…. 첫 이민 목회지였던 콜럼비아한인연합감리교회(SC)에서 설교할 때 십일조는 물론 주일도 지키지 않는 교인이 자식들에게 복을 비는 교인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언어로 격하게 질타했던 일, 그리고 교회 내 불륜관계로 교회가 공중분해 되기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장본인을 설교시간에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질타했던 일들, 기라성 같은 선배 목사님들의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보고 거침 없이 지적했던 때를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때는 가능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해당되는 장본인들은 나의 그 무례한 말과 행동을 감정으로, 혹은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임으로 아무 문제 없이 그 어려운 상황을 수습과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생 시절, 부산 삼일교회에서 고신 측 홍반식 학장을 강사로 초청하여 무슨 집회인지 세미나인지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큰 예배당에 교인들이 꽉 차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뒤에는 보조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거의 맨 뒷자리 보조 의자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오래전 일이라 홍 학장께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강의 내용에 ‘루터란 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홍 학장께서 흥분한 어조로 자신의 상반신을 강대상 앞으로 기울이고 오른손을 들어 청중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여러분! 루터교회, 그거 뭐 하는 교회입니까?” 홍 학장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되어 있었고 그 분위기에 장내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으나 그 순간 나는,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세차게 열고 뛰쳐 나왔던 때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이제는 은퇴 10년 차가 되어 휴스턴에서 살다 보니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니까 병든 고양이’로 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좀 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젠 내가 나서야 할 공간이 없다는 것과 이해관계가 없고 책임질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문제’만 보고 지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평온한 은퇴목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해관계가 있고 내가 책임질 위치에 있다면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은데 글쎄,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모난 성격 때문에 공개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심한 말을 들었음에도 나를 이해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목사가 은퇴하면 목사의 기능은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됩니다. 또 그러해야 하고…. 그러나 주변에 후배 목사님들을 볼 때 선배 목사로서 꼭 하고 싶은 말,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묻지 않으니 말할 수 없고 또 설령 묻는다 하더라도 바른말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냥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습니다. “유 목사, 성질 다 죽었나 봐!” 지금은 모나고 과격했던 성격이 주의 은혜와 세월의 흐름 속에 조금이라도 다듬어 진 것 같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롱마당 이야기
유 목사, 성질 다 죽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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