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IQ는 158입니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역자들은 저의 이 같은 비상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특히 나의 아내는 남편의 천재적 두뇌를 부러워하기보다는 굉장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이 칼럼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같은 비상함에 부러워한다든가 기분 나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적 기관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수치(數値)가 공부하는 머리라면 더 바랄 것 없겠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머리는 겨우 두 자리에서 벗어나 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같은 천재적 두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능지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 못 했다거나 혹은 섭섭하게 했던 행동이나 마음 상하게 했던 그 말 한마디를 기억하는 수치를 말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누가 나에게 섭섭하고 마음 상하게 했던 그 말 한마디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혹은 몇십 년 전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비상한 기억력입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 친절을 베푼 것은 어쩜 그렇게도 쉽게(빨리) 잊어버리는지, 아니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참으로 신기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은 아마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잊어(혀)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큰 복 중의 하나인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비상한 기억력 때문에 잊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잊혀도 충분할 텐데 그날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56년 전) 교장실에 불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칭찬받을(상 받을) 일이 있었나? 설레는 마음으로 교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 그리고 나와 같은 반(班) 상진이와 그의 아버지인 듯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진이 아버지는 우리 학교 육성회장이셨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제 운동장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상진이와 결투를 했는데 그는 나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좀 맞았는데 아마 그 일로 나를 부른 것 같았습니다. 분위기는 험악했으나 그래도 여기가 교장실인데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옆에 계시는데 설마...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상진이를 때린 아이가 나라는 것을 확인한 육성회장께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욕설과 함께 두드려 패기 시작했는데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습니다. 당연히 교장 선생님의 만류(挽留)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교장실 이쪽저쪽으로 쫓겨 다니면서 손으로 맞고 발로 걷어차이며 두들겨 맞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은 그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런 놈은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육성회장님의 막강한 힘에 눌렸는지 육성회장께서 본인 스스로 지쳐 그만둘 때까지 맞았습니다. 그날의 아픔은, 친구(?)의 아버지가 때린 그 아픔보다, 교장실에서, 그것도 교장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방비상태로 두들겨 맞는 그 '상황'이 더 큰 아픔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끼리, 그것도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정정당당하게 싸웠는데 아들이 졌다고, 그것도 교장 선생님이 계신 교장실에서 육성회장답지 못한 가장 저급한 욕설과 함께 거의 죽을 지경까지 맞았으니, 아무리 지우고 싶은 지난날의 상처이지만 워낙 비상한 두뇌를 가진 탓이라 그날 그 순간이 평생 섭섭한 마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울면서 교장실을 나서는 나를 보고 안쓰러워하시던 선생님들의 모습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 종일토록 마음이 버거웠던 것은, 나에게도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아버지끼리 한판 붙었을 텐데 나에겐 그럴만한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내 일생을 통해 아버지 없는 서러움을 느껴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언 리가 주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해묵은 영화필름을 돌리는 것 같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으니 스스로 천재라 해도 이견(異見)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그가 쓴 ‘동적평형(動的平衡)’에서 ‘기억물질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가 없다’라고 했는데 쉽게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기억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상황이 이렇게 또렷이 기억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것은 ‘뭔가가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과거가 생생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생생한 감각 속에 있다’라고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평생 목사로 살아온 나에게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면 이런 것쯤이야 아름다움으로 승화(昇華)시켜도 될 텐데 글쎄, 그게 잘 안 됩니다. 나는 분명 그날의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연유(緣由)에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교장실에서 일어난 그 날의 사건이 현재 나의 비상한 기억력(감각)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섭섭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결국 나만 피곤해질 것입니다. 상진이나 그의 아버지,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뇌에는 60여 년 전에 대한 ‘기억물질’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기억의 감각’은 나를 피곤하게 할 뿐 아니라 나의 피를 썩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할 텐데 나 자신이 천재적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가장 현명한 삶이 될 텐데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으니 이거야 원!
아롱마당 이야기
IQ 158
조회 3회댓글 0개
댓글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